'빅쇼트'로 본 금융 버블…美 주택시장 '거품 붕괴'에 베팅해 큰 돈

입력 2020-03-20 17:28   수정 2020-03-21 09:38


“주택시장 붕괴에 쇼트하고 싶어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한참 앞둔 2005년 어느 날 마이클 버리 박사(크리스천 베일 분)는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은 온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큰 소리의 메탈 음악을 틀어놓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엑셀 파일만 보는 ‘괴짜’다. 채권 목록만 수천 페이지가 넘는데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투자자의 질문에 마이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다 읽었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마이클은 월가의 투자은행들을 찾아 모기지 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사겠다고 제안한다. CDS는 기업이나 국가의 파산 위험 자체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실제로 파산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험과도 같다. “여긴 월가다. 공짜돈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비웃는 골드만삭스 직원에게 마이클은 되레 “채권이 부도났을 때 이곳의 지급 능력에 문제가 없을지 확답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버블은 꺼진다”

‘빅쇼트’는 최근 폭락장에서 다시 주목받는 ‘차트 역주행’ 영화다. 2008년 세계 경제를 금융위기로 몰아간 일명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각색했다. 2016년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큰 흥행과 함께 제88회 아카데미상 각색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위기가 당시 금융위기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뜨고 있다.

‘쇼트’는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미리 매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주식 용어다. 주가가 떨어진 뒤 싼 가격에 되사서 갚아 차익을 내는 기법이다. 쉽게 말해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다. 시세가 오를 거라고 판단해 매수하는 ‘롱’과는 반대다. 영화 제목 ‘빅쇼트’는 말 그대로 하락장에 ‘크게’ 베팅한다는 뜻이다.

영화는 2005년 금융위기가 벌어지기 전 견고할 것만 같았던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될 거라는 마이클의 예측으로 시작한다. 마이클이 쇼트한다는 소식은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분)의 귀에도 들어간다. 자레드는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분)의 헤지펀드사를 찾아 주택시장 폭락에 ‘투자’를 권유한다. 수천 개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구성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나무블록 ‘젠가’에 비유해 설명한다. 부실 대출로 이뤄진 CDO는 하나의 나무조각만 꺼내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젠가와 같았다.

개 이름으로 대출, 6채 주택을 빚으로 산 스트리퍼

마크와 동료들은 자레드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실제로 주택시장 거품이 있는지를 찾아보기로 한다. 이들이 방문한 100여 채가 넘는 주택단지에 사는 사람은 고작 네 명. 90일 이상 연체된 대출은 알고 보니 개 이름으로 돼 있었다. 주담대를 받은 저신용자를 찾아간 스트립클럽은 더 충격적이었다. 마크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월 상환금이 200~300%까지 오를 수 있어”라고 말하자 스트리퍼는 놀라서 “모든 대출이 다 오른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알고 보니 스트리퍼는 주택 하나당 여러 개의 대출을 끼고 무려 여섯 채를 갖고 있었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마크가 만난 스트리퍼처럼 부채 상환 능력이 없는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대출해준 것이 뇌관이 됐다. 마크가 플로리다에서 만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준다는 브로커들은 “대출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냐”는 마크 일행의 질문에 박장대소한다. 소득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른바 ‘닌자(NINJA·no income no job) 대출을 해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이들의 타깃은 ‘집을 준다고 하면 아무 데나 서명하는’ 이민자들이다.

미국의 주담대는 프라임, 알트-A, 서브프라임 등 3등급으로 구분된다. 이 중 서브프라임은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이 대다수를 이룬다. 신용도가 낮다 보니 대출 금리는 프라임보다 2~4%포인트 정도 높다.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금융회사가 떠안게 되는 리스크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2002년 말 3.4%에 불과했던 서브프라임 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말 13.7%까지 치솟는다.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다. 2004년부터 미국 기준금리가 올라가며 부동산 거품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니 서브프라임 주담대 금리도 올라갔다.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저소득층 차입자들은 내야 할 이자가 크게 늘자 원리금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현실 경제에서 사람은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

영화 중간에 깜짝 등장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 교수는 부동산 시장 호황을 ‘뜨거운 손 오류’에 비유한다. 뜨거운 손 오류는 농구 경기에서 선수가 연달아 공을 넣으면 또 넣을 거란 확신이 생기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탈러 교수는 부동산 호황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호황이 계속되면 가격이 계속 오르니깐 아무도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뜨거운 손 오류’에 빠져 있었다. 주택시장 거품이 꺼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마크는 미국증권화포럼을 찾는다. 그곳에서 “모기지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외치는 연설을 듣게 된다. “서브프라임 손실이 5%에 그치는 게 얼마나 가능하냐”는 질문에 연설자는 웃으며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답한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마크는 가능성은 ‘제로(0)’라고 외치며 연설장을 박차고 나간다.

제이미(핀 위트록 분)와 찰리(존 마가로 분)도 마찬가지로 포럼에서 ‘뜨거운 손 오류’에 빠진 사람들을 본다. 두 청년은 한때 대형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분)의 도움을 받아 주택시장 하락에 쇼트를 취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던 ‘우량’ AA등급 채권까지 폭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베팅한다. 일생일대의 거래에 성공한 제이미와 찰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자 평생 돈만 밝히는 은행에 환멸을 느꼈던 벤은 “너희는 방금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다는 건 알고 있느냐”고 소리친다.

그때의 신호는 지금도 유효한가

결국 시장의 징후를 파악한 이들의 말이 맞아떨어졌다. 금융회사들은 비우량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CDO를 만들고, 이를 담보로 CDO-1, CDO-2, CDO-3를 만드는 식으로 파생상품을 무한정 찍어냈다. 수천 개의 부실 대출로 만들어진 CDO에 투자한 대형 금융회사들은 주택 가격이 폭락하며 대출금 상환이 안 되자 결국 줄줄이 파산한다.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고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경기가 침체되자 미국은 경기 부양책으로 양적완화에 나섰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직접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도 증가해 경기 부양 효과를 낸다. 《그래프 1》에서 화폐 공급곡선이 MS1에서 MS2로 이동하면(화폐 공급량이 늘면) 균형이자율은 r1에서 r2로 하락한다. 이자율은 자금의 차입비용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래프 2》에서 이자율이 하락하면 주어진 물가 수준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량은 Y1에서 Y2로 증가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며 경기가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자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15일에도 7000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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